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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리 (LiveRe)/댓글로 세상보기

댓글로 세상보기(2) - 인터넷 실명제의 미래, 그리고 온라인 소통

<댓글로 세상보기>는 시지온이 ‘소셜’과 ‘댓글’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국내외 인터넷 관련 산업 동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외부와 정기적으로 공유하는 서비스입니다.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해외 사례들의 소개와 라이브리가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인터넷이 만들어 나가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시지온만의 관점과 통찰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댓글로 세상보기 (2)

인터넷 실명제의 미래, 그리고 온라인 소통




인터넷 실명제 2.0


인터넷 실명제는 한국 정부의 전매특허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 같은 상식에 대한 반론이 여기 있다. 2011년 6월, 인터넷 익명성에 대한 온라인 여론은 구글의 자사 SNS인 구글 플러스 ‘실명 정책’(real name policy) 발표에 따라 다시 한번 들끓어 올랐다. 법적 이름과 동일하지 않은 이름으로 등록한 계정에 대해서는 삭제 조치를 취한다는 해당 정책이 인터넷 사용자들로부터 지탄을 받은 것이다. 2009년 한국 정부가 유튜브 서비스에 대해 인터넷 실명제를 적용하는 것에 반발해 한국 국가 설정으로는 업로드, 댓글 작성을 모두 차단한 구글이 자신들의 사용자에게는 그렇게 싫어했던 ‘실명제를’ 적용한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단순한 해외 토픽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스마트폰 3000만 시대가 도래했으며, 페이스북 사용자만 해도 1000만에 가깝다. 스마트폰을 쓰는 세 명 중 하나는 페이스북을 쓴다고 볼 수 있다. 구글 역시 검색만으로 따지면 점유율이 높지는 않지만, iOS의 경쟁 체제로서 안드로이드의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그들의 실명 정책 도입이 만들어낼 파장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실명 중심으로 성장한 페이스북의 성공에 따라, 페이스북의 실명 정책을 모방하는 인터넷 기업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따라서 국내에서 정부 주도로 2007년부터 시행됐던 인터넷 실명제(정식으로는 ‘제한적 본인 확인제’)는 작년 헌법재판소로부터 한정위헌 판결을 받고,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과 충돌함에 따라 약화될 추세에 있지만 이것으로 실명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인터넷 기업을 중심으로 자기 정체성을 공개하고, 공유하는 소셜 웹 서비스가 유행하고, 그에 결합된 온라인 상품의 발달하고 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인터넷 실명제의 제2막이다. 사용자를 더 잘 알면 잘 알수록 이윤을 창출하기 좋은 것이 새로운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이라면, 플랫폼 기업들에겐 강제적으로라도 실명을 적용하고자 하는 추가적 인센티브가 발생한다.



주목 받는 인터넷 강국의 슬픈 자화상


올해로 인터넷 도입 30주년을 맞는 한국은 이 같은 진화하는 실명제 논쟁에서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상황이다. 이유는 한국이 2011년 구글 플러스 실명 정책 사건, 2012년 미국 뉴욕시 의회 온라인 익명 표현 금지 법안(Internet Protection Act) 발의 사건이 있기에 앞서 2007년부터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하고, 확대해 왔기 때문이다. 한 예로, 독일의 대표적 시사 주간잡지인 슈피겔(Der Spiegel)은 2011년 8월 5일 인터넷상에서 익명성에 대한 찬반 갈등을 다루면서 실명제를 도입함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 사례로 한국을 언급했다. 


해당 기사에서 인용한 조대곤(美카네기멜론대학 박사과정) 외 2인이 국내 포탈 업체 한 곳과 언론사 한 곳의 토론 게시판을 샘플로 시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명제 도입 이후 온라인상에서 공격적, 반규범적 언어를 사용하는 비율은 27%에서 20%로 다소 감소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악플 작성자들은 실명제에도 불구, 자신의 언행을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연구에서 자주 댓글을 남기고, 그래서 신뢰를 통해 온라인 정체성을 획득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부정적 댓글을 6배는 덜 남긴다는 것이 발견됐다. 



4.11 총선과 소셜댓글


시지온이 보유한 라이브리 데이터는 조대곤씨의  실명제 연구와 같은 결론을 보여준다. 지난 2012년 3월, 선거관리위원회는 소셜댓글이 공직선거법에 저촉된다고 공식선거기간 동안 ‘인터넷 실명 조치’를 요구했다. 공직선거법82조의6제1항을 문자적으로 해석해 “행정안전부 장관 또는 신용정보업자가 제공하는 실명인증방법”에 해당하지 않는 소셜 댓글은 실명 확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에 따라4.11 총선기간 동안 소셜댓글을 설치한 다수 언론사들이 소셜댓글을 내리고 기존 실명 댓글 시스템을 이용해야 했다. 

 



이에 따라 2012년 4월 한달 동안 일시적으로 실명제를 적용했던 경향신문의 사례를 놓고 보면, 실명제의 시행은 온라인 소통을 위축시켰으나, 악성 댓글 감소 효과는 미미했다. 경향신문은 인터넷 실명제가 적용된 2012년 4월에는 전월대비 댓글이 약 34% 감소했다. 반면에 같은 기간 이용약관을 위반하는 악성댓글로 분류돼 차단당한 비율은 2012년 3월 72.53%, 2012년 4월 71.29%로 유사했다. 즉, 실명제가 악플을 줄이는 효과는 불확실하지만, 온라인 소통을 위축시키는 효과(chilling effect)는 확실하다. 



실명, 가명, 그리고 익명과 온라인 소통


그럼 온라인 소통을 위축시키는 실명제는 나쁜 것일까? 실명제가 나쁘면 익명이 좋은 것일까? 그것은 이분법적 사고이며, 흑백논리다. 실명과 익명 사이에는 가명도 존재한다. 법적인 이름은 아니지만, 자신이 활동하는 커뮤니티에서 인정받는 닉네임도 있다. 예를 들어, 나는 ‘김재연’이란 내 법적 이름이 있지만, 블로터닷넷(Bloter.net)의 필진으로 사용한 ‘비전 디자이너’란 필명이 외부엔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럴 경우 가명 사용이 실명 사용보다 책임을 덜 가지는 것도 아니다. 가명으로도 충분한 신뢰와 지지를 주변 관계에서 받고 있다면, 온라인에서 실언, 망언을 할 경우, 그 동안 내가 쌓아온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한 번에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대개 예명을 사용하는 연예인들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실명과 익명의 이분법을 넘어서 온라인 소통에 대해 실증 조사를 한 연구 결과가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소셜댓글 선두업체인 디스커스(Disqus)가 월 6억명의 사용자가 남긴 6천만개의 댓글을 토대로 2012년 1월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명’(일종의 닉네임을 사용하는) 사용자가 익명 그리고 실명을 사용하는 사용자보다 더 많은, 그리고 더 나은 댓글을 남긴다. 평균적으로 가명 사용자는 익명 사용자보다는 6.5배, 페이스북으로 실명을 밝힌 사용자보다는 4.7배 더 많은 댓글을 남겼다. 가명 사용자의 댓글은 61%, 익명 사용자는 34%, 실명 사용자는 51%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양적으로는 전체 댓글 수로 평가를 내린다. 질적으로는 페이스북 라이크수와 트위터 리플라이수로 긍정성을, 디스커스 시스템의 플래그(flag)수, 스팸 확인수, 삭제 조치수로 부정성을 평가한다.) 

 


온라인 소통의 핵심은 내 이름이 진짜 내 이름이냐가 아니다. 말을 하는 데 책임을 부여하는 ‘사회적 맥락’이다. 그리고 그러한 맥락을 만드는 것은 강제적으로 삽입된 제도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형성된 문화다. 



더 생각해볼 만한 주제들: 

  • 최근 3개월 이내에 익명으로 댓글을 다신 적이 있나요?
  • 그런 적이 있으시다면 혹은 없으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작성 2012.06.15 | 전략경영팀  김재연 전략 매니저